[김광호 칼럼] 이재명 정부가 ‘역사의 필연’이 되려면
작성자행복인
- 등록일 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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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불법계엄 내란을 민주공화 정신에 따라 단죄해온 지난 반년은 우리 정치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 상상할 수 없던 파괴적 탐욕이 거친 행동으로 여과 없이 분출하고 공론장은 피폐하다. 필요한 것은 유능함과 정치 존중이다. 정치도, 정치를 감시해야 할 국민도 무능했기에 우리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전쟁 정치 종식’라는 제1공약을 실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의 자리에 존중 대신 갈등과 분열을 심어오고 짧게 잡아도 십수년 켜켜이 쌓인 ‘악습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4일 취임선서 직후 여야 제 정당 대표부터 만나 ‘비빔밥 오찬’을 하고, 취임사를 대신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 다짐한 걸 주목하게 된다. 정치 존중은 새 정부의 신념이 돼야 한다. 정치를 존중한다는 건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정치는 결국 하나하나 인간 길항의 결과로만 도출된다. 따라서 존중은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이해하지 않은 정치적 식견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고 만 것이 인간의 역사다. 윤석열의 무능과 실패가 가장 비근한 교훈일 것이다.
국민을 향한 정치는 수학적 진리를 대하듯 해야 한다. 정치는 비교적 투입과 산출이 명료한 것이다. 존중을 투입하면 결과가 산출되지만, 강압을 투입하면 저항을 만난다. 집단으로서 민심의 작동방식이 그러하다. 이 공식과도 같은 것을 정치의 언어로 ‘상식’이라 한다. 권력에 취하지 않도록 늘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한다.
‘사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주권자 국민에 대한 사과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사과는 위임 권력이 국민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며, 국민과 같은 위치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방법이다. 사과에 인색할수록 사과할 일이 많아지는 것 또한 역설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관료 조직에 긴장감도 불어넣는다. 그 연장선에서 대변인에 신뢰하는 사람을 기용하고 힘을 실어야 한다. 대변인은 말 그대로 국민과의 사이에서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민심이 확인하려는 건 대통령 권력이 그들의 위임 안에 있음이지, 시시콜콜 권력 행사를 다 아는 게 아니다. 허욕에 가까웠던 윤석열의 도어스테핑에서 보듯 그건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여당엔 ‘대화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언한다. 정책을 두고 대화할 뿐, 정무라는 이름으로 당 결정을 통제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여당을 가장 선한 견제자로 매김할 때 국회에서 정치 풍향은 바뀌게 된다. 여당조차 존중받지 못하는데, 야당이 존중을 기대하겠는가. 흔히 새 정부 첫 원내대표는 ‘극한직업’이라고 하는데, 자율성과 책임을 주고 국회 정치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태도의 무능’이다. 야당을 대하는 왕도는 결국 겸손과 인내일 수밖에 없다. 진보 야당이든, 보수 야당이든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이 지금 실용주의를 정치적 이념으로 삼았듯, ‘국민의 대통령’이 된 이상 진보 정책만, 보수 정책만 할 수는 없다. 승부보다 설득, 결과보다 과정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야당 대표를 연정 파트너 대하듯 한다면 최상일 것이다.
이 모두는 황폐한 정치가 주는 사소한 교훈들이다. 이 대통령은 그러려 해도 주변과 지지층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이재명’을 통해 권력을 쥐고, 꿈을 실현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유능하게 단속하고, 용감하게 설득해야 할 진실의 순간도 올 것이다.
새 정부는 대선에서 받은 ‘위임 표심’에 어떤 희망들이 담겨 있는지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권력을 행사하는 목표이자 한계가 돼야 한다. 내란의 온전한 청산,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국가, 삶의 풍요, 그리고 그 끝자락엔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치도 있을 것이다.
8년 전 탄핵 광장에서 정치인 이재명은 ‘사이다’였다. 그래서 떴는데 이번에 그는 ‘고구마’ 같았다.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란 열정과 현실 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라 했다. 지금의 이재명이 ‘진화’일 것이라 믿는다. 지지층에서 국민으로, 열정에서 사려로. “정치보복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재명이 분열의 정치를 끝낼 적임자”라는 ‘셀프 추천사’가 현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