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쪽샘유적서 최초 확인된 돌방무덤, 5차례 걸쳐 독특한 형태로 매장
작성자행복인
- 등록일 25-06-01
- 조회97회
- 이름행복인
본문
이번 조사에 포함된 돌방무덤(K91호 무덤)은 쪽샘지구의 1300여기 무덤 중 최초로 확인된 형식인데, 5차례에 걸쳐 독특한 형태로 매장이 있었다. 돌방무덤(石室墓)은 판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만들고, 출입시설을 갖춘 무덤이다.
깬돌을 사용하여 네 벽을 쌓아 만든 무덤방은 길이 2.9m, 폭 2.3m 크기로, 방 안에서는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한 공간이 5곳 확인되었다. 방의 가장 안쪽인 북쪽 벽에 붙여 폭 76cm, 높이 15cm의 시신받침(시신과 부장품을 놓기 위해 만든 시설)을 만들고, 그 위에 금귀걸이 한 쌍을 착용한 시신을 안치한 것이 최초 매장이었다. 주변에서는 미늘쇠, 철제 낫, 운모 등 부장품도 함께 출토되었다. 시신받침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무덤방의 바닥에는 자갈돌을 깔았다.
2·3차 매장은 1차 시신받침의 남쪽에 붙여 1차보다 높은 31cm 높이에 폭 78cm, 폭 79cm의 시신받침을 각각 만들어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였다. 4차 매장은 3차 시신받침 남쪽에 붙여, 폭 70cm, 높이 31cm의 시신받침을 만든 후 공간이 좁아 널길까지 확장해 이루어졌다. 2~4차 매장에서는 금동제 허리띠 장식, 철제 손칼, 미늘쇠, 쇠도끼, 병(甁) 등이 부장품으로 출토되었는데, 여러 차례 이뤄진 매장으로 인해 흐트러진 채 출토되었다.
5차 매장은 이전 매장과 달리 남북 방향으로 긴 부장 공간을 만들었는데, 동쪽 벽에 붙여 폭 50cm, 높이 20cm로 만들었다. 남쪽으로 굽다리접시 등 토기류를 부장하였고, 좁은 공간 때문에 시신 안치는 기존 2~4차 시신받침을 재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돌방무덤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 돌무지덧널무덤(K254·K255호)에 먼저 묻힌 사람들과 가족 등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무덤 방 주변으로 돌려져 있는 2개의 석렬(石烈)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확장하면서 봉토를 쌓는 ‘양파형 성토법’으로 축조됐다.
출토 유물들로 미루어 돌방무덤은 6세기 중·후엽 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돌방무덤은 쪽샘지구 1300여 기의 무덤 중 최초이며, 대릉원 일원 전체에서도 7기에 불과하다. 국가유산청은 “6세기 이후 신라 지배층의 무덤 형태가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변화하는 모습, 나아가 당시 사회 집단 또는 계층별 무덤군의 장소 선정이나 장례 방식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함께 조사된 덧널무덤(J230호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길이 3.4m, 폭 0.8m의 나무 곽을 짜서 넣은 뒤 구덩이와 나무 곽 사이 돌을 채운 형태로, 내부에는 시신과 함께 철제 창, 큰항아리, 컵모양 토기 등을 부장하였다. 유물로 보아 쪽샘지구에서는 드문 4세기 후반 경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의 반경 20m 내에서는 크기가 비슷한 덧널무덤이 무리 지어 있는 데 반해, 동쪽에서는 5세기에 만들어진 지름 10m 이상의 돌무지덧널무덤이 무리 지어 있었다. 국가유산청은 “쪽샘지구 무덤군이 시기별, 계층별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동국대 WISE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와 쪽샘지구 유적에서 매년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해오고 있다. 이번 조사 성과와 출토 유물은 30일 발굴조사 현장에서 일반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