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나무, 거목으로 성장하다···K발레 레전드 ‘최태지×문훈숙’ 헌정 공연
작성자행복인
- 등록일 25-05-30
- 조회111회
- 이름행복인
본문
나무는 한국 발레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은유였다. 서구 예술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던 변방, 발레와 관련된 것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기 어려웠던 척박한 땅. 하지만 오늘날 명실공히 르네상스를 맞이한 한국 발레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무대가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마련됐다.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66)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62)이 주인공이었다.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또 지도자와 경영자로서 자타공인 ‘한국 발레의 레전드’로 불리는 두 거목이 무대 위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대한민국발레축제’ 15주년 특별공연으로 진행된 공연 <커넥션(conneXion), 최태지×문훈숙>에서는 두 거장의 여정을 따라 무대 위 앙상했던 나무가 봄, 여름을 지나 가을날 결실을 맺는 형태로 변해갔다. 두 주인공을 중간에서 연결해 준 이는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 대한민국발레축제 예술감독이었다.
K-발레에 기원전과 후가 있다면 아마도 최태지·문훈숙 두 사람이 각각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하던 1980년대 이전과 이후일 것이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최태지는 일본발레협회 회장의 제자였던 ‘한국 발레의 선구자’ 임성남 전 국립발레단장을 만난 이후 1897년 고국의 발레단에 오게 된다. 최태지는 “일본에도 없는 ‘국립’이라는 단어에 강하게 이끌렸다”고 했다. 문훈숙도 한국 태생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나고 자란 문훈숙은 이날 “발레가 아니었다면 아마 최 단장님과 만날 수도 없었을 텐데 발레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났고, 무용수로 또 경영자로 오랜 세월 동행해 왔다”고 했다. 흔히들 이들을 남진·나훈아 같은 영원한 라이벌로 묘사하지만 실상 두 사람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둘도 없는 존재였다. 문훈숙은 “어떻게 하면 발레를 발전시킬지, 좋은 명작들을 가지고 오고 또 창작할지, 단원 처우는 어떻게 개선할지 늘 꿈과 고민이 같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최태지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만 36살에 국립발레단 단장이 됐다”면서 “국립극장 산하에 있다가 하루 아침에 독립하게 됐는데 늘 예산과 지원이 부족했다”고 했다. 그는 “여기 있는 김주원 ‘뮤즈’를 데리고 예산 담당 공무원들 찾아다니면서 ‘공연 하루 하면 토슈즈가 몇 개나 쓰이는지 아느냐’며 호소했더니, ‘빨아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 봄을 맞아 무대 위 나무의 가지에는 하얀 벚꽃이 만개했다. 그리고 이어 푸르른 잎들이 무성하게 뒤덮었다.
대중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 한국 발레의 명작들은 대부분 이 두 사람이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 작품 라이센스부터 안무 지도까지 세계 최고의 발레단인 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발레단이 큰 역할을 하는데, 두 거장의 산파술로 이들 발레단의 DNA가 한국의 국립·유니버설 두 발레단으로 스며들었다.
최태지는 “지난 19일 타계한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 선생님은 국립발레단에는 제2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무용수는 무대에서 작품을 만날 때 성장하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릴까만 고민했고 그때 그리고로비치를 만났다”고 했다. <호두까기 인형>(2000)부터 <백조의 호수>(2001), <스파르타쿠스>(2001)를 비롯해 여섯 작품은 그리고로비치가 직접 안무를 손보아가며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지도하며 무대에 올린 작품들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마린스키의 유산을 전수받았다. 문훈숙은 “구소련 당시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은 비디오로만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발레단이 미국 순회 공연 중에 제 영상을 본 것이 계기가 돼 1989년에 ‘지젤’ 공연에 초대받아 공연한 뒤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됐다”고 했다. 문훈숙은 “1992년에 ‘백조의 호수’를 올리고 싶다고 했는데 첫마디가 안된다, 그걸 할 수준이 아니라고 거절당했다”면서 “겨우 설득한 뒤 무려 6개월을 준비해 올렸더니 마린스키에서도 그 근성에 크게 감동하더라”고 했다. 그후 23년간 마린스키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낸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1998년 유니버설에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10년 가까이 재임하며 정통 고전발레의 명맥을 이어갔다.
# 나뭇잎에는 완연한 가을빛이 스며들었다.
명작·고전 레퍼토리를 확실하게 장착한 한국 발레는 다음 단계인 창작 발레로 나아간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제작한 <심청>은 2011년부터 월드투어 메인 작품으로 발레 본고장인 러시아와 프랑스 무대에 올라 현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국립발레단도 <왕자호동> <허난설헌> 등의 창작 발레를 선보이며 한국적인 발레를 모색했다.
전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 한국인 무용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무용수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1999년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장을 시작으로 김주원, 김기민, 박세은, 강미선 등 무용계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도 5명이나 배출했다.
이날 공연은 일종의 토크쇼 형태로 진행됐지만 기라성 같은 무용수들의 발레 무대도 함께 선보였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전·현직 수석무용수들이 헌정공연 무대를 빛냈다.
두 발레단의 ‘간판’ 전·현직 수석무용수들이 나와 고전과 창작 발레 파드되(2인무)를 2개씩 선보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이현준이 나선 <라바야데르> 니키아와 솔로르 파드되를 시작으로 황혜민 전 수석과 이동탁 수석이 창작 발레 <심청> 문라이트 파드되를 보여줬다. 특히 황혜민 전 수석은 8년 만에 발레 무대에 선 것이어서 박수 갈채를 받았다.
공연 마무리를 앞두고는 국립발레단 창작 <왕자호동> ‘호동과 낙랑의 사랑’과 <레이몬다> 파드되가 펼쳐졌다. 호동과 낙랑은 국립발레단의 전·현직 수석 정영재와 김리회가, 레이몬다 파드되에는 국립발레단의 전성기를 이끈 발레리나 김지영 전 수석(경희대 교수)과 이재우 수석이 함께 했다.
<왕자호동>은 지난 달 작고한 문병남 전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이 안무했고, <레이몬다>는 러시아의 유리 그리고로비치 개정안무 버전이었다. 이날 파드되는 최근 세상을 떠난 발레계의 두 거인에 대한 추모사이기도 했다.